국가지도집 2권
벼농사가 신석기 시대에 전래되어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게 되면서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벼농사에 대해 최초로 문헌에 언급된 삼국사기 백제 다루왕 6년(A.D. 33년)의 기록에서 논(도전)을 국가적으로 만들게 하였다는 것을 볼 때, 삼국 시대에는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안정적인 농업용수 확보가 중요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하천의 제방이나 배수로의 축조는 물론, 물이 많을 때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저수지의 축조가 국가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일성왕 11년(A.D. 144년) 왕명으로 제방 축조와 전야 개척을 명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흘해왕 21년(A.D.330년)에 축조된 김제의 벽골제, 삼한 시대에 축조된 제천의 의림지와 밀양의 수산제는 우리나라 고
농업을 중시하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치수관련 사업과 수리 행정이 크게 발달하였다. 1395년(태조 4년)에 권농관제도를 두어 제언(댐) 축조를 권장하였으며, 1419년(세종 1년)에는 제언대장을 2부 만들어 비치하였고, 이후 제언사라는 관청을 창설하여 댐 시설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동국문헌비고』에는 1782년에 조사한 전국 제언(댐) 총수가 3,378개소에 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은 삼남 지방(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 분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