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도집 1권

대도시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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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은 근대 이후 급속한 인구 증가와 함께 공간적 확장을 경험하였다. 조선 시대 서울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정치·행정 중심인 한성부 도성 5부와 도성의 외곽 지역인 성저 10리로 이루어진 도시였으며, 19세기 말에는 인구가 약 20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 철도가 부설되고 전차 노선이 건설되면서 서울의 공간적 범위는 성곽을 넘어 확장되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의 이주와 함께 농촌 지역에서 서울로의 인구 이동이 시작되었고, 이를 수용하기 위한 다수의 택지 지구가 건설되었다. 서울의 인구는 광복 직후 90만 명 정도였으며, 해외에 거주하던 동포의 귀국으로 6ㆍ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170만 명으로 성장하였다. 산업화 이전 시기에도 서울은 큰 폭의 인구 증가를 경험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서울로의 인구 집중은 가속화되었다. 서울로의 인구 집중은 도시 외곽의 개발로 이어졌고, 지하철의 개통은 서울의 외연적 확장을 촉진하였다. 이에 1963년 경기도 양주군, 광주군, 김포군의 일부분을 편입하여 서울의 총면적은 269㎢에서 593㎢가 되었고, 1973년에는 경기도 시흥군과 고양군 일부를 편입하여 605㎢가 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서울의 공간적 확장과 함께 도시 내 행정 구역도 세분되었다. 1943년 7개의 구가 신설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25개 구로 개편되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6개의 광역시 역시 인구와 면적의 증가를 경험하였다. 지방의 거점 도시인 광역시는 인구 증가에 따라 도에서 분리된 직할시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주변 지역을 통합하여 광역시로 개편되었다. 부산은 개항 이후 국제항으로서 발전해 왔으며, 지속적인 항만과 도시 개발로 인해 인구가 유입되었다. 1960년에 100만을 넘어선 부산은 1963년 직할시로 승격되었고 인구의 증가와 함께 낙동강 삼각주 지역이 도시화되었으며, 인근 김해군, 창원군 등을 편입하여 면적이 확장되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 출범과 함께 양산군 지역을 편입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구광역시는 1981년 직 할시 승격과 함께 달성군, 칠곡군, 경산군의 일부 지역을 편입하였으며, 1995년 광역시의 출범 이후 달성군을 편입하여 시역이 대폭 확장되었다. 수도권의 관문 도시인 인천은 1981년 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강화군과 인근 도서 지역을 편입하여 광역시로 재편되었다. 호남의 중심 도시인 광주광역시는 1949년 시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에 부산, 대구, 인천에 이어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이후 1988년 송정시와 광산군 지역을 편입하여 행정 구역이 대폭 확장되었으며, 1995년 광역시로 재편되었다. 대전광역시는 1949년 시로 승격된 이래 인근의 대덕군 지역을 편입하여 성장하였으며, 1989년에는 대전 직할시 승격과 함께 대덕군 전역을 편입하였고, 1995년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울산광역시는 공업 단지의 입지와 함께 급속하게 성장하여 1962년 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 울산군과 통합하였으며,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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