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도
도봉산과 북한산을 배경으로 하면서 백악산(白岳山)· 인왕산(仁王山)·목멱산(木覓山, 남산)·타락산(駝駱山, 낙산)의 내사산(內四山)을 중심으로 한양의 빼어난 자연 환경을 산수화처럼 그린 서울 지도이다. 도성 안 시가지 의 인문(人文) 현상은 평면적으로 처리하여 풍부한 지명을 기록하고 주위의 산세와 대비되도록 하였다. 여백에 는 행정 구역, 도성의 크기와 도로를 기록하였는데, 창덕 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기점으로 삼았다. 이 당시에는 창덕궁이 실질적인 정궁(正宮)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남쪽을 바라보며 정사(政事)를 보는 왕의 시각에 맞추어 그려, 지도의 상단이 남쪽으로 되어 있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조선의 서북 지방과 중국의 만주 일대를 그린 대표적 인 관방지도(關防地圖)이다. 지도 제목의 ‘피아(彼我)’는 중국 청나라와 조선을 의미한다. 청나라의 침입에 대한 방비를 목적으로 제작된 일종의 군사 지도이다. 지도는 백두산(白頭山)을 중심으로 만주의 흑룡강으로부터 서 쪽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는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데, 길게 세워진 성책(城柵)과 도로를 따라 설치된 역참(驛站), 군사 기지의 성격을 지닌 진보(鎭堡) 등을 자세히 표시하였다. 무엇보다 방위의 배치가 독특한데, 남북 방향으로 배치하지 않고 국토의 좌향(坐向)인 해좌사향(亥坐巳向, 북서북-남동남)을 상하의 축으로 삼았다. 만주에는 청 나라의 발상지인 오라(烏喇)와 영고탑(寧古塔)이 홍색으로 강조되어 있다.
기성전도
평양을 대동강 위에 떠 있는 배의 모습처럼 그린 회화식 지도이다. 기성(箕城)은 기자(箕子)가 평양에서 정전(井田)을 경영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평양의 별호이다. 진산(鎭山)인 용악산을 배경으로 성안의 관아·도로·지명·인가 등을 자세하게 그렸으며, 향동(香洞)의 냉면가(冷麵家) 의 모습도 보인다. 석성(石城)이었던 내성(內城)과 북성(北城)의 흰 성곽, 대동강에 모여든 여러 종류의 배들, 10리에 달했다고 하는 장림(長林), 을밀대의 송림(松林), 토성(土城)이었던 중성(中 城) 밖의 정전(井田) 등을 유려한 필치로 묘사한 지도이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100년 전 평양 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철옹성전도
철옹성으로 불리는 영변 읍성의 모습을 정교한 필치로 그린 지도이다. 철옹성은 관서 지방의 최종 방어 선 역할을 담당했던 산성이다. 험준한 산지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서 산성으로서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의 끈질긴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이다. 본성(本城)과 산지에 축 성된 북성(北城)·신성(新城)·서성(西城)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문은 안주·평양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 이었다. 서성은 약산성(藥山城)이라고도 불리며, 약산(藥山) 동대(東臺)는 관서 지방의 명승지로 꼽히는 곳으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나오는 ‘약산 진달래’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