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도집 2권 2020

대한민국의 대표 간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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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서 · 남해안은 잘 발달한 간석지와 얕은 바다의 리아스식 해안으로, 만 입구의 양쪽 끝 사이는 거리는 짧으면서도 내부 간석지의 면적이 넓어 간척하기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에는 양곡 증산 및 군량미 조달을 위해,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에서의 쌀 증산과 토지 개량 사업을 목적으로 간척이 이루어졌다. 광복 후에는 기근 해결을 위한 식량 증산 목적으로 소규모 간척이 이루어졌고, 1970년대 이후에는 농업 종합 개발 목적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다목적 종합 개발로 간척 사업이 추진되었다.

 

 대규모 간척 사업은 해양 생물 서식지를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육상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은 연안역의 해양 생태계 건강성을 악화시켰고 다양성을 훼손하였다. 2000년대 이후 훼손된 연안 지역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선진국과 같은 규모가 큰 연안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 기관 및 지방 자치 단체를 통해 소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안 생태계의 생태 · 사회 · 경제적 잠재력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지속성을 확보를 아주 중요한 토대이다.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화 천도가 단행되자, 이주민들이 급증하면서 이를 부양하기 위한 막대한 식량이 필요하였다. 병란이 장기화되면서 조정은 체계적인 개간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해안 저습지 간척은 그중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다. 고종 43년(1256년)에는 조강 연안의 제포와 와포에 둑을 쌓아 좌둔전을 만들고, 염하 연안의 이포와 초로를 막아 우둔전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후 공민왕 때부터는 새로운 공법으로 깊은 갯골까지 막을 수 있게 되어 넓은 간척지가 나타나게 되었고, 대표적인 간척 사업은 교동도 북쪽의 인점포 일대의 영산언 공사이다. 이후 조선 개국 초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약 200년 동안은 대규모의 간척 사업은 없었다. 숙종대에 이루어진 간척 사업은 비포언과 북적언, 가리언 등이 있고, 특히 강화도 남쪽의 선두포언은 강화도 최대 규모의 간척 사업이다. 강화 지역의 간척 사업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일단 완료되었고, 1910년대까지 굴곶포와 초지의 남쪽에 남아 있던 소금밭을 제외하면 개간 가능한 갯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현대적 토목 기술을 통해 강화도 남단을 비롯한 일부 해안에서 간척 사업이 재개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일대에서는 한국 전쟁 후 피란민을 대상으로 사업 참여자를 모집하여 간척이 이루어졌다. 1954년에 3 - 4세대가 이주하였으며 그 후 꾸준히 유입되어 약 100세대가 공유 수면 614,876㎡를 간척하는 둑막이 공사를 시작하여 1961년에 완료되었다. 조성된 간척지는 완공 후 3년이 지난 뒤부터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며, 이 간척지는 ‘신간지’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주민들은 주로 천막에서 생활하면서 둑막이 조성에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공사 비는 준공 후 갚는 조건으로 조합에서 사채를 빌려 조달하였으며, 부족한 채무는 인근 지역 주민에게 토지를 매각하여 충당하였다. 간척 완료 후 채무 반납지를 제외한 토지를 이주민들에게 참여 일수에 따라 차등 배분하였다. 마지막 간척은 부사 지구 간척으로 1980년대 후반 민간 기업에 의해 시작되어 1991년에 완료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규모 간척: 서산 간척 사업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독자적 기술을 활용하여 대규모 간척 사업들을 시행하였다. 그중에서 서산 간척 사업은 대한민국에서 민간 기업에 의해 진행된 최초의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1980년 착공하여 1995년 완공되었다. 1984년에 물막이 공사가 끝났는데, 천수만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빨라 물막이 공사의 막바지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폐유조선을 바닥에 가라앉혀 물살을 막고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방조제의 길이는 A, B 지구를 합해 총 7,686m이며, 방조제 건설에 의해 매립된 면적은 15,409ha이다. 서산 A지구에서는 9,626ha, 서산 B지구에서는 5,783ha가 매립되었다. 매립된 지역의 대부분은 농경지로 개발되었고, 이 사업 결과 당시 서산군은 논의 면적이 한국에서 가장 넓은 행정 구역이 되었다. 이 사업에 의해 담수호인 간월호 (A지구)와 부남호(B지구)가 형성되었으며, 간월도가 육지와 연결되 었다. 굴의 산지로 유명하였던 간월도는 육지와 연결된 후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간척 사업은 낙후되었던 서산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겨울철 철새들의 서식지로 이용되고 있다. 대규모 농업 지역의 특성상 사람의 접근이 어렵고 기계 영농에 의한 낙곡이 많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에 철새의 서식지가 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철새는 가창오리, 큰기러기, 말똥가리 등이 있다. 하지만 방조제 건설 후 갯벌을 서식지로 하는 도요새류는 감소하였고, 담수호의 수질은 점차 악화되었다. 현재 담수호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 새만금 간척 사업

 

 새만금 방조제는 1991년 기공하여 2006년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다. 방조제의 총길이는 33.9km이며 토지 28,300ha와 호소 11,800ha를 조성할 계획이다. 새만금 방조제의 길이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만경평야의 ‘만’자와 김제평야의 ‘금’자에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의 ‘새’자를 덧붙여 만들어졌다. 오래전부터 유명한 만경 · 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 일구어 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만금의 내부 공간 구조 계획은 1991년 초기 구상 이후 크게 네 번의 수정을 거쳤고, 가장 최근 계획은 2014년 9월에 확정되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산업 · 연구 용지, 국제 협력 용지, 관광 · 레저 용지, 농 · 생명 용지, 배후 도시 용지, 환경 · 생태 용지 등 총 6가지 용지가 개발될 계획이다.

 

 새만금 사업은 국토 확장, 대규모 우량 농지 조성, 수자원 확보 효과와 관광권 형성을 통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 과정에서 갯벌의 훼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담수 이후의 수질 오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