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도집 1권  2019

영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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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고대의 역사는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기원 전 2333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성립되었으며, 고조선 시대는 기원 전 10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부여와 동예, 옥저, 삼한의 부족 국가가 성립되었다. 이 시기를 일반적으로 원삼국 시대라 하는데, 이 당시에는 만주와 한반도 전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강역이었다. 부여의 세력권은 주로 만주를 중심으로 하였으며, 동예와 옥저는 한반도의 북부와 중부, 마한과 진한, 변한의 삼한은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에 위치하였다.

 

 기원 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 이 전의 부족 국가들을 계승하고 병합하며 고구려와 백제, 신라, 가야가 건국되었다. 이 시기를 삼국 시대라 하며, 이 시기 역시 만주와 한반도 전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강역이었다. 고구려는 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하였고,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부, 백제는 서남부를 중심으로 하였다. 7세기를 전후로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하며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한반도 내부 영역에서 통일 국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698년 고구려 유민에 의하여 발해가 건국되었다. 이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한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북방 영토를 개척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고려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을 막아내며 강화 회담을 통하여 강동 육주의 점유를 확인하였고, 1033년부터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거란·여진과의 경계로 삼았다. 이를 통하여 현재의 신의주에서 함흥 인근을 잇는 영역으로의 북방 영토 회복을 이루었고, 이후 고려 후기에 이르기까지 북방 영토 확장 노력을 지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도 북방 영토 확장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 15세기 조선은 압록강 유역에 사군을, 두만강 유역에 육진을 설치하였다. 이는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는 현재 대한민국 영토의 회복을 의미한다. 18세기 조선은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당시 중국 청(淸)과의 국경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근대와 현대, 대한민국의 역사는 조선에 이은 대한 제국의 성립, 일본에 의한 강점과 독립, 미국과 구소련에 의한 군정과 6·25 전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국제 사회의 제국주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고종은 1897년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내부적인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결국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대하던 일본에 의하여 1910년 강점당하여 일시적으로 대한민국은 영토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일제 강점기라 하며, 일제 강점기는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 운동은 국내외에서 지속되었고, 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과 함께 우리 민족은 독립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영토는 북위 38도선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며, 이와 같은 분단은 1948년 남한과 북한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되며 고착화되었다. 이후 남과 북은 1950년 6·25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3년 넘게 지속된 6·25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중단되었고, 대한민국은 현재까지 60여 년 간 휴전 상태인 채로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60여 년 간 남한과 북한은 경쟁과 대립의 역사를 이어왔으나, 이산가족 상봉과 정상 회담, 개성 공단의 운영 등을 통하여 상호 신뢰를 구축하여 분단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조선에서 기원 전후의 시기를 요하 시대라고 한다. 요하를 둘러싸고 기원 전 4세기부터 기원 후 4세기까지 1,000여 년 동안 한민족 세력, 중국 세력, 북방 세력이 각축을 벌였다. 한민족의 역사로 보면, 고조선과 고구려가 활약하던 시대로, 요하를 둘러싸고 중국 세력과 고조선, 고구려가 쟁패를 벌이던 시대이다. 한민족 최초의 국가를 이룬 고조선이 세력을 확장하여 요하로 진출하면서 요하 일대는 중국의 연과 세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고조선은 기원 전 4세기 말경 요하 일대를 연에게 빼앗긴 이래 끝내 요하를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했다. 기원 후 1세기부터 성장한 고구려는 요하를 확보하기 위해 북방 세력의 선비족과 전쟁을 치루었다. 결국 4세기 말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에 이르러 요하를 확보하였다. 이 시대의 고조선과 고구려의 요하 영유권은 한민족 국가들에게 요동(요하의 동쪽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마련했고, 이 연고권을 바탕으로 요동 정벌이 여러 차례 단행되었다.

 

 5세기 전후, 즉, 4~7세기는 한강 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에서 대치하여 한반도 주도권을 두고 각축을 벌이던 시대이다. 한강은 백두대간 줄기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흘러들면서 한반도 허리부를 가로지른다. 북쪽으로는 광주산맥과 철령 부근까지 물줄기가 뻗쳐 있고, 남쪽으로는 소백산맥과 광주~음석을 연결하는 산지에 둘러싸여 그 유역이 광대하다. 4세기 말 이래 7세기까지 300여 년은 한강을 둘러싸고 패권 다툼이 벌어진 시대로, 이른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에 해당한다.

 

 가장 먼저 한강을 선점한 국가는 한강 유역에서 건국한 백제였다. 4세기 말 고구려가 남하하여 한강을 차지하면서 한강은 백제와 고구려의 대치선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영토 경쟁은 치열해졌다. 결국 신라는 당과 연합해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신라는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려는 당과 결전을 치루어 당을 몰아냈다. 이때 만들어진 통일 국가의 골격은 고려와 조선을 지나면서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편, 고구려 멸망 30년 후 고구려 계승국을 자처하는 발해가 고구려 옛 땅에서 건국했다. 발해와 통일신라는 대동강 선에서 7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이르는 200여 년 동안 대치했다. 이 시대를 대동강 시대, 이국(二國) 시대, 혹은 남북국 시대로 부른다. 5경, 15부, 62주로 구성된 발해는 건국 후 비약적인 영토 확장을 이루었다. 동북 만주의 쑹화강, 헤이룽강 일대를 확보한 후에 발해는 한반도 방향으로 남진했다. 이를 견제하던 당은 8세기 초 신라에 발해 공격을 요청했고 신라는 원병을 보냈다. 이후 9주 5소경의 행정 구역을 둔 통일신라는 대동강 일대를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북진 정책을 가속화하였다. 남진하려는 발해와 북진하려는 신라는 대동강 선에서 대치하였으나 이 시대에는 두 세력이 공존하던 대치선이라는 특징이 있다. 한강 시대와는 달리 대동강 시대는 별다른 전쟁이 없었다. 이는 두 나라가 평화 공존의 관계였음을 나타내며, 두 나라 모두 당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10세기 초 당의 멸망으로 인한 혼란은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를 개편시켰고 이 과정에서 발해가 멸망했다. 발해의 멸망은 한민족 영토사에서 만주 지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가 상실된 것을 의미한다. 같은 시기에 통일신라도 쇠퇴했고, 이후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