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판 2022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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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의 삶의 터전인 영토는 전근대 시기에 제작된 고지도에서도 표현된다. 이는 한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살아오며 형성된 영토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우리나라를 그린 전도뿐만 아니라 세계 지도, 고을 지도 등 다양한 지도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도 제작의 역사는 삼국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남아 있는 지도는 조선 시대 이후의 것들이다. 현존하는 고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지도로는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들 수 있다. 이 지도는 당시 제작된 세계 지도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지도를 보면 중화적 세계관에 기초하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던 당시 개방적인 대외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조선이 아프리카보다 크게 그려지는 등 중국에 버금가는 문화 국가로서의 자부심이 반영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세계 지도들도 당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역동적으로 보여 준다. 실재하는 나라들과 가상의 나라들이 혼재되어 그려진 「천하도」 , 지도의 중앙 경선을 태평양 중심에 둔 「천하도지도」 , 오세아니아 대륙이 남극 대륙과 분리되어 그려진 「지구전후도」 등이 대표적이다.

 

  15세기에는 국토의 측량을 기초로 한 조선 전도의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전도로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팔도총도」를 들 수 있다. 이 지도는 지지를 보완하는 부도(附圖)의 성격으로 수록된 내용이 간략하나 울릉도·우산도(지금의 독도), 흑산도와 같은 섬들이 강조되어 그려져 우리의 영토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왜란과 호란의 양대 전란을 겪은 후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유형의 지도가 제작되면서 우리의 영토를 개성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18세기 중엽에는 조선 후기 지도 역사에서 분수령이 되는 정상기의 「동국대전도」 가 제작되었다. 이 지도는 약 42만분의 1의 대축척 지도로 백리척(百里尺)이라는 독창적인 축척이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의 영토는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르러 완결된 형태로 묘사되었다.

 

  지도 제작의 흐름은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개항 이후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근대적 측량 기술을 접하고 삼각 측량으로 지도 제작을 시도했다. 당시 지리 교과서로 집필된 「대한지지」 나 「대한신지지」 에는 경위선 좌표 체계에 기반한 전도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장지연의 「대한전도」 에는 당시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북간도가 우리의 영토로 그려져 있다. 우리의 영토를 그리려던 노력은 1910년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면서 단절되었다.

 

<사진> 대동여지도 목판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는 조선 시대 지도학의 모든 성과들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축척은 대략 1:16만 정도이다. 우리나라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120리 간격으로 나누어 전체를 22층으로 만들고, 각층은 80리 간격으로 끊어서 병풍처럼 첩으로 만들었다. 22개의 첩을 모두 연결시키면 가로 410 cm, 세로 660 cm 정도의 대형 전도가 된다. 표현 기법에서는 산지를 이어진 산줄기의 형태로 표현하여 산천을 통일적으로 인식하는 산수분합의 원리를 반영했다. 각종 범례의 사용과 더불어 도로에 10리 마다 표시를 하여 지역 간의 거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내륙의 산천에서 도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영토가 지닌 개성적 면모를 세밀하게 표현함은 물론, 예술적 아름다움까지 갖춘 조선 시대 지도의 최고 걸작품 중의 하나이다.

 

고지도에 나타난 동해와 독도

 

  한반도 동쪽의 바다 이름인 동해와 우리의 소중한 영토인 독도는 고지도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동해라는 명칭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릉비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과 같은 다양한 문헌 자료에서 볼 수 있지만, 일부 고지도에도 수록되어 있다. 고지도에 표기된 동해 지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아국총도」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아국총도」는 아름다운 채색이 돋보이는 소형 전도로서 ‘동해’가 ‘서해’, ‘남해’와 더불어 바다에 표기되어 있다. 또한 「천하도지도」에는 조선의 주변에 ‘소동해(小東海)’, ‘소서해(小西海)’라는 바다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동해와 더불어 독도도 다양한 고지도에 표현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라 칭했는데, 조선 전도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의 군현 지도책에 수록된 울릉도 지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의 지도에는 독도인 우산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지지만 조선 후기에는 울릉도의 동쪽으로 방위가 수정되어 그려졌다. 이는 안용복 사건을 거치면서 독도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지도에 반영된 결과이다.

 

  독도가 그려진 군현 지도책으로는 18세기의 「조선지도」 가 대표적이다. 이 지도는 전국 각지의 군현 지도가 활발하게 제작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새롭게 만든 지도이다. 울릉도의 동쪽으로 우산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전 시기 회화적 기법을 가미한 지도에 비해 울릉도 본섬에서 더 떨어져 있다.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좌전도」 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를 만날 수 있다. 울릉도 옆에 부속 도서의 형태로 우산도를 작게 그렸는데, 산봉우리의 모습도 그려 넣었다. 아울러 울진에서 이어지는 해로의 모습도 보이며, 그 옆의 여백에는 울릉도의 연혁과 지리에 관한 글이 기재되어 있다.

 

  동해 지명이나 독도는 서양의 고지도에도 표현되어 있다. 서양 지도에서 조선이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로, 처음에는 섬의 형태로 표현되다가 차츰 반도의 형태로 제 모습을 갖춰나가게 된다. 이들 지도에 조선의 동쪽 바다는 한국해 또는 동해 명칭으로 표기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세닉스(Senex)가 1720년에 제작한 「아시아 지도」이다. 이 지도에서 우리나라는 ‘K(ingdom) of Corea’로, 동해는 ‘The Eastern Sea(동해)’ 또는 ‘Corea Sea(한국해)’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1735년 당빌(D’Anville)의 「조선왕국전도」 에서는 조선이 처음으로 상세하게 표현되었는데, 울릉도(Fan-ling-tao)와 우산도(Tchian-chantao)도 동해안에 표기되었다.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표현한 것은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에서도 확인된다. 1894년 다나카 아키요시(田中紹祥)가 제작한 「신찬조선국전도(新撰朝鮮國全圖)」 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죽도(竹島)와 송도(松島)로 표기되어 있고, 한반도와 동일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는 일본에서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동해 명칭도 일본의 지도에서 볼 수 있는데, 다카하시 가게야스가 1809년에 제작한 「일본변계략도(日本邊界略圖)」 가 대표적이다. 이 지도에서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고, 울릉도와 우산도를 ‘울릉도(菀陵島)’, ‘천산도(千山島)’로 표기하여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