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판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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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지도 제작의 역사는 삼국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남아 있는 지도는 조선 시대 이후의 것들이다. 현존하는 고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지도로는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들 수 있다.

 

이 지도는 당시 제작된 세계 지도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지도를 보면 조선의 영토가 서쪽의 아프리카 대륙보다 크게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중국에 버금가는 문화 국가로서의 자부심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영토가 가장 명확하게 그려진 것은 조선 전도에서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는 국토의 측량을 기초로 한 조선 전도의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전도로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팔도총도」를 들 수 있다. 이 지도는 지지를 보완하는 부도(附圖)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수록된 내용이 간략하다.


  왜란과 호란의 양대 전란을 겪은 후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유형의 지도가 제작되면서 우리의 영토를 개성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18세기 중엽에는 조선 후기 지도 역사에서 분수령이 되는 정상기의 「동국대전도」가 제작되었다. 「동국대전도」는 약 42만분의 1의 축척 지도로, 백리척(百里尺)이라는 독창적인 축척이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의 영토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르러 완결된 형태로 묘사되었다.


  지도 제작의 흐름은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개항 이후 조선은 일본에서 들여온 근대적 측량 기술을 접하고 삼각 측량으로 지도 제작을 시도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삼각 측량이 행해졌고 일부 지방에서도 측량에 의한 지적도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당시 지리 교과서로 집필된 『대한지지』나 『대한신지지』에는 경위선 좌표 체계에 기반한 전도가 수록되기도 했다.

 

특히 장지연이 저술한 『대한신지지』에 수록된 「대한전도」에는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북간도가 우리의 영토로 그려져 있다. 우리의 영토를 그려 내려 했던 이러한 노력은 1910년 우리 영토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면서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