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의 의미와 가치 인식
국토는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로 영토·영해·영공을 의미하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배타적 영역이다. 국토는 국민의 삶이 영위되는 기반이 되며,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는 민족의 공간이 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규정하여 국토의 의미를 법적으로 명확하게 하고 있으며, 국토를 수호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유지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소중한 의무이다. 경제적 개념으로는 국민 생산 활동의 기반을 의미하며, 토지 및 자원의 이용 가치를 고려함에 있어 국토는 ‘생산 공간’으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국토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온갖 활동을 수행하는 장소의 집합으로서 ‘생활 공간’으로 고려될 수 있다.
국토는 주로 ‘위치’로서 인식되며, 수리적 위치와 관계적 위치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수리적 위치는 경도와 위도로 표현되는 절대적 위치로, 국토지리정보원에 위치한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대한민국의 수리적 위치를 보면 극서는 동경 124도 10분 47초, 극북은 북위 43도 00분 36초이며, 극동은 동경 131도 52분 22초, 극남은 북위 33도 06분 45초이다.
|
대한민국의 영토와 영해
|
반면에 관계적 위치로서의 국토는 상대적·가변적 위치로서 인접 국가나 타국의 상황에 의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국외의 정치·경제·사회적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적 위치는 시대 상황과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받는다. 또한, 변화하는 관계적 위치는 국민들이 가지는 국토 인식관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과거 고지도에 표현된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모습은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주변국과의 관계에 의해 사실보다 과장되거나 또는 축소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
전·근대 국토 인식은 주로 산과 강의 분포에 따라 지역을 구분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고려 및 조선 시대의 행정구역은 전통적인 지역 구분에서 기인하였으며, 국토와 지역에 대한 당대의 인식은 조선 후기 1751년에 이중환에 의해 저술된 『택리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근대 이후의 국토 인식은 교육 체계의 정비 이후 지리 교육을 통해 그 모습이 구체화되었다. 다양한 저자에 의해 제작된 조선 말기 – 대한 제국 – 일제강점기의 지리 교과서들은 한반도의 수리적 위치를 서술함과 동시에, ‘반도국’ 또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국가 또는 바다에 대한 서술 방식을 통해 당시의 관계적 위치를 함께 정리하였다. 특히, 1930년대 중반 발간된 중등학교 지리 교과서는 조선반도(한반도)를 ‘시베리아에서 일본으로 통하는 세계 교통의 대간선’이라 표현하며 아시아 대륙과 일본을 연결하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고 서술하며, 당시 한반도를 교두보로 동북아시아 일대로 진출하려 했던 일본과 주변국의 관계적 의미를 내포하였다. 또한, 당시의 지리 교과서들은 한반도의 형상을 ‘토끼’에 비유하는 등 교육을 바탕으로 한 국토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생산하거나 반영하였다.
|
관계적 위치에 따라 ‘반도’로 대표되는 국토 인식은 과거 식민 경험을 포함하여 여러 차례의 침략을 받았던 사실을 설명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한반도는 반도에 위치하고 있어 대륙과 해양 사이에 놓여 있으며, 이로 인해 주변 강대국들에 의한 침략과 식민 경험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냉전 시기에 이르러 당시 시대상을 이해·설명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세력과 미국과 동맹국들의 자유주의 진영이 마주하는 지점으로 한반도가 가지는 관계적 위치와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국토는 반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 강대국들에 둘러쌓여 있기에 약소국으로서 전쟁의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하는 국토 인식을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의 국토 인식에 이와 같은 지정학적 두려움이 존재했던 것과 동시에, 이러한 관계적 위치를 지경학적 희망으로 해석하려는 국토 인식 역시 존재하였다. 1970년대 한반도의 관계적 위치는 반도적 특성으로 인해 대륙과 해양 세력에게 침략만을 감내하는 것이 아닌, 대륙과 해양 세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경제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가진 것으로 판단되었다. 1971년 시작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공업 지역을 한반도 남동쪽의 해안지역에 입지시키며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교두보의 확보’를 강조하였다.
지경학적 희망과 가능성을 품은 국토 인식은 1970년대 이후 지속된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였다. 2011년 수정된 제4차 국토종합계획은 글로벌 경쟁 체제의 심화에 대응하며 개방적 국토 인식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였다. 특히 공항, 항만, 고속철도 등 초고속 교통수단 및 글로벌 인프라를 중심으로 한 국토종합계획은 글로벌 시대에서 타 국가와 가지는 관계적 위치를 과거의 반도적 한계로부터 180도 반전시킨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
|
|
2017년 해양수산부가 배포한 ‘거꾸로 세계 지도’는 해양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우리 국토의 가능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국토 인식 제고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거꾸로 세계 지도’는 기존의 지도와는 달리 북반구를 아래쪽, 남반구를 위쪽으로 배치하여 제작하였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넓은 태평양이 지도 중심에 펼쳐져 있어 바닷길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나라의 진취적인 해양 정책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해양 진출의 여러성과물인 해운 항로 및 극지 항로 개척, 극지과학기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지도의 배포 당시 해양수산부는 거꾸로 지도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토는 중국과 러시아를 배후지 삼아 바다로 나아가는 ‘부두’ 형태의 국토로 해양 진출에 있어 천혜의 요충지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국토의 의미와 가치 인식은 수치적 위치와 관계적 위치의 결합과 국제 정세, 그리고 우리나라가 가지는 정치·정책적 목표에 따라 다른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국토 인식은 시대적 상황과 기술의 발전 등의 변곡점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토 인식이 가지는 가변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 ‘대한민국 국가지도집’은 편찬 의도에 맞게 국토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시대상을 담아내고자 한다.
|
prevnext
|